나는 기계제어 공학부를 졸업하여 기계공학 대학원 안의 분산제어 연구실에서 학업을 이어 나갔다. 나름 제어이론에 대한 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분산제어를 접한 후에 '제어는 다 거기서 거기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학부시절 단일 객체 제어를 공부하고 석사과정에서 분산제어의 맛을 잠깐 보았던 풋내기의 섵부른 판단 이었다.
역학적 그리고 수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명확한 답을 내려온 제어분야를 동경함과 동시에 깊은 수학적 배경을 따라갈 자신이 없었던 나는 박사과정의 꿈을 과감히 접고 취업에 뛰어들었다. 적용하는 도메인이 다를 뿐, 제어지식은 어디에나 동일하게 적용된다라고 생각하였고(실제로도 그렇다.), 몇년에 걸친 자율주행과 로봇분야에 심물이 났던 나는, 단일객체이면서 제어 목표가 명확한 모터 제어라는 분야를 알게되었다. 운이 좋게도, 졸업 당시 지능형 모터 트렉이라는 산학 연계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거기에 합격하여 운좋게 모터 제어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모터제어는 내가 이제껏 해왔던 분야와는 다르게, 소프트웨어 알고리듬 보다는 하드웨어적 설계가 매우 중요한 영역이였다. 내가 현업에서 맡은 직무는 모터 제어지만, 현재는 회로이론과 전력전자를 기반으로 한 회로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다. 후에 경력이 쌓인다면 모터를 제어하는 알고리듬을 MCU에 프로그래밍하는 임베디드 개발 또한 참여할 수 있겠으나, 석사학위의 개발자에게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 직무이기도 하다.
모터 제어분야는 대학원 시절부터 산학과제를 통해 수많은 석,박사들이 현업의 이슈들을 다루고 해결하고 온 느낌이 강하다. 내가 속했던 연구실에서는 연구 단계에서의 이론적 검증이나 간단한 실험적 검증을 통해 과제가 마무리 되었다면, 모터 제어 분야는 용역 수준의 과제를 처리한다고 느껴졌다. 그 만큼 해당 분야 졸업생들은 바로 협업에 투입해도 될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터 제어 분야에서는 새로운 모터 제어 알고리듬을 설계한다기 보다는(필자가 기존 연구실에서 해왔던 것이다.), 기존의 소프트웨어적 제어기 형태를 그대로 갖추고, 모터 제어기 회로의 하드웨어 구조나 인버터를 설계함으로써 이루어 진다. 임배디드 소프트웨어 개발 또한 하드웨어적 지식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배재하고 수행하기 매우 어렵다.
어찌되었건, 회로와 전력전자 분야의 하드웨어적 지식을 갖추는게 필수적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지금, 다시 학부생 수준으로 돌아가 회로 이론과 전력 전자를 공부하고자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제어 공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 제어 공학이 수학적 배경을 깊이 요구하는 학문이다보니, 모터 제어 분야에서 제어 공학 엔지니어를 높게 평가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모터 제어분야에서는 '우리가 하는 '제어'는 '제어'가 아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는 제어기에 대해서는 PID 제어를 고정시켜 놓은 상태에서 기타 하드웨어적 해법을 찾는 시도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제어 공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지식이 많이 휘발됐을 뿐더러, 그것을 정말 '이해'했다고 보니는 무리가 있다. 내가 직접 생각해 내서 한 활동 보다는 이미 있는 것을 긁어서 붙여넣어 하나만 바꾸는 식의 성실한 작업만을 수행했다는 생각만 든다. 모터 제어 분야에서는 다루는 지식이 많은 만큼, 자칫하다간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되기 쉽상이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래서 제어 공학을 한 사람으로써 다른 기초적인 부분들을 공부하되, 제어 알고리듬 설계하는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자면, '기본적인 하드웨어 지식을 갖춘 제어 알고리듬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모터 제어기 개발자' 이다.
앞으로 어떻게 포스팅을 해 나갈지 고민이 많았다. 대학교 수준의 과목은 내가 한번에 이해해서 정리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단순하게 교제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수년의 학업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왜 라는 질문을 할때는."이라는 리처드 파인만의 영상이 있다. '왜 자석의 같은 극 끼리 서로 밀어내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천재 물리학자는 '왜 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게 왜 어려운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는 질문자가 진실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명제들 위에서 설명해야 한다. 이게 명확하지 않을 시, 끊임없는 왜라는 질문에 빠지게 된다. 일반인의 주변에 친숙한 것들로 자기력에 대해서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리처드 파인만은 그저 '자석의 자기력 때문에 서로 밀어낸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특히나 공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끊없이 파고 들어갈 수 있다. 공학을 공부할 때는 '어느 수준의 지식까지를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참인 명제로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놓인다. 이는 사람 마다, 호기심의 정도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자신이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그 대답을 찾지 못한다면, 이는 그 사람이 그것을 진짜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전기, 자기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의 물리 수준까지 들어가야 하며, 그렇기에 전자기학이나 회로이론을 정말 깊이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회로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전자기학을, 전자기학을 이해하기 위해 양자역학을 공부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에 적절한 '참인 명제'를 설정하고 그 명제 위에서 설명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다 보면 정말 내 것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첫 포스팅을 마친다.